나는 기대가 배신되는 것이 두려운 편이다. 그래서 가급적 기대를 하지 않고 살아가려 한다. 그런 이유도 있을 수 있겠지만, 청렴하고 투명한 공직자라는 것은 나에게 그다지 큰 의미를 주는 존재는 아니다. 내가 노무현 전대통령에게 가지는 기대도 청렴결백은 아니었다. 나는 그가 마음에 들었다. 그가 내려온 자리에 올라간 어느 천민처럼 비인간적인 배금주의와 사기로 평생을 더럽히지 않더라도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 수 있었던 노력이 좋았고, "싫어도 할 것은 해준다"는 자세와 비권위적인 태도가 좋았으며, 그가 고난에 대처하는 방식이 좋았다. 박노자는 그를 개혁사기꾼이라 칭했지만, 나는 그의 정치적 스탠스가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이라 해도 좋았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고, 그런 면에서 노블했다. 게다가 그런 그가 대통령이 된 과정은, 없는 것처럼 보이던 대안이 사람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고 이뤄진 사례라는 면에서 나에겐 기쁨으로 다가왔다.
말했듯 내가 그에게 기대한 것이 청렴결백이 아니었기에, 최근의 수사과정이나 결론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릴만큼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가 자살을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해보게 된다. 하나는 "나도 그렇게 되고 말았다"는 부끄러움, 혹은 (외람되지만) 책임회피이며, 또 하나는 밑에서 위로 올라온 자를 용서하지 않는 사회의 복수다. 둘 중 어느 것을 정답으로 간주한다 해도 나에게는 한국 사회의 변화 가능성이 상징적으로 사망한 사건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외국에 있으면서 인터넷으로만 접하다보니 점점 한국이 고담 대구처럼, 실제로 황당한 흉악범죄가 전 시민의 삶을 매일 위협하는 곳은 아니리라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면서도 막상 가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안 드는, 그런 곳으로 느껴지던 터다. 개떼들이 계급적으로 지배하며 군림하는 것도 끔찍한데, 그것이 영원히 변화하지 않고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에이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인데"라는 말을 할 기운도 나질 않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결국엔 한국으로 돌아갈 유학생이 별 다른 고민도 대책도 없이 "한국 들어가기 정말 싫다, 여기서 살고 싶다"며 찌질대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참 보기 안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제 한국을 버리겠다"느니 하는 (게다가 자의식 과잉이기까지 한) 말은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제는 이글루스도 좀 버릴까 생각한다. 내가 뭐 대단한 블로거도 아니고 절필하겠다느니 그런 건 아니다. 그냥 블로그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글을 올리거나 리플을 확인하고, 리퍼러를 보거나 이오공감, 밸리를 둘러보는 일상화된 패턴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마찬가지로 구글리더에서도, 특히 시사관련 블로그들은 삭제하려고 한다. 좋은 소식이나 이야기가 있을 거라는 기대, 한국 사회와 완전히 단절돼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과 그에서 비롯되는 기대 같은 것을 끊어볼까 한다. 말했듯, 나는 기대가 배신되는 것이 두려운 사람이니까.
꽤나 많은 사람들이 소중하게 기릴, 설령 잊으려 해도 아마도 두고두고 그리워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