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p 20 공연에서 크리스 커닝햄을 욕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더러운 마약쟁이의 역겨운 무개념 작품이라는 식으로. 반면 정말 재밌어 하며 신나게 즐기는 사람들도 있어서, 나치 전당대회 연단 모습을 바라보며 춤을 춘다든가, 히틀러를 바라보며 환호하고 손을 든다든가
(나치식 경례는 아니더라도) 하는 좀 충격적인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비쉬 정부를 통해 "어쨌거나" 나치에 협력했던 과거가 있는 프랑스인들로서는, 과거를 청산했다고 해도 어느 정도의 뜨끔한 부채의식이 있을 수도 있는 것 같아서, 그런 알레르기 반응이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나치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이 없는 사회에서 자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작품이 굉장히 참신하다고 생각했다.
남자가 여자에게 주먹질을 퍼붓는 장면이나, 강간 살해의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는 두 번째 영상이나, 외계인의 뇌가 으스러지는 러버 쟈니 같은 것이 모두 크리스 커닝햄이 사랑하는 이미지라고 보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본격적 유명세를 선사한 Come to Daddy도 그렇지만 Windowlicker에서도 "자, 보기 좋으니?" 하는 태도가 가장 먼저 드러나지 않았나. 겉보기에 추한 것을 가지고 간지를 부리는 것이 크리스 커닝햄의 장기라고 생각하지만, 보는 사람에게 불편함을 제공하는 것 또한 그의 장기가 아닌가. 적어도 내가 나치 영상 시퀀스에서 받은 인상은, "이런 영상에도 나는 너희를 춤추게 만들 수 있어. 하지만, 너희가 뭘 보고 멋지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주의해."라는 메시지였다. 더군다나 트랜스와 흡사한 BPM과 정박의 킥, 히틀러 연단의 하얗게 타오르는 조명 등은 분명 레이브에 대한 직접적인 은유이다. 히틀러의 연설이 독일인들을 일종의 트랜스 상태로 이끌었다는 식의 증언들을 상기해보자. 커닝햄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DJ로 표현될 수 있는) 미디어의 권력에 관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할리우드의 플라스틱 영상으로 소비되는 나치 이야기는 분명 "지금 이곳에 있는 나와 무관한" 타인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을 엔터테인먼트화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요컨대 그와 관련된 어떠한 비난도 나에게 돌아올리 없기 때문에 안심하고 욕하고는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나치에 대한 비판은 나치에 가담했던 개개인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파시즘과 폭력, 대중조작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나치가 불편한 사람이라면 아프가니스탄과 팔레스타인에 대해서도 불편하게 느껴야 하며, 그런 양심의 행사가 없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어쩌면 학습된) 나치 비판에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 의심해봐야 마땅할 것이다.
또한 나치의 대표 범죄가 인종주의였다고는 해도, 전체주의의 성격은 차치하고 인종주의부터 비난하는 것에서는 한글날에 국어를 사랑하자는 주장을 하는 것과 같은 어긋남이 느껴진다. 특히나 한국에 전체주의와 전혀 무관하지 않은 불안이 감돌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할리우드의 나치 관련 영화들이 대부분 유태인 학살이라는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 하는 것이 불편한 것은 이런 이유다. 물론 유태인을 가스실에 쳐넣는 것이 강렬하고 호소력 있긴 하지만, 실은 인종주의와 살인행위에서 범죄의식을 벗겨낸 파시즘이 정말 무서운 일인 게 아닐까.
게다가 똑같이 커닝햄이 틀었던 다른 영상들은 폭력성 면에서 결코 덜하지 않았다. 육중하고 잔인한 브레이크비트에 맞춰서 여자의 몸에 주먹을 꽂아넣고 몸이 꺾이고 근육이 흔들리는 모습은, 독일군의 행진보다 강렬했고, 휠체어에 탄 러버 자니의 머리가 으깨져서 체액이 흐르며 혀가 경련을 일으키는 모습은, 히틀러가 주먹을 휘두르며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보기 괴로웠다. 아니, 아무리 스케일이 달라도 그렇지 "우리의 이웃" 유태인의 죽음은 참을 수 없지만 흉측한 모습의 외계인 아기는 눈앞에서 집요하게 사냥당해 부서져 버려도 즐거운가. 다음 날 공연이지만, 에이펙스가 새 파트너로 택한 헤커는 시체에서 내장을 헤집는 모습을 틀었는데, 그건 한 사람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건가? 혹은 그가 코카시안이기 때문에? 인간이 인간의 생명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는데 규모와 대상의 차이가 있을 수 있나.
커닝햄 자신도 나치 영상이 어느 정도로 불편함을 일으킬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주먹질 영상을 짧게나마 다시 한번 틀어 타협점을 찾은 게 아닐까 상상한다. "나 원래 이런 사람이야"인지, 혹은 "히틀러 이렇게 패주고 싶지?"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히틀러나 나치에 관련된 것이 비판 메시지 없이 나오기만 하면 바로 역겹다고 비난하는 것과, 살인범의 얼굴을 공개하라며 돌을 던지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더구나 박노자의 말처럼 역사가 거대한 거짓말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한다면, 혹시 나치 독일이 2차 대전에 승리했을 때에도 우리는 히틀러를 적그리스도로 규정하고 비난하고 있었을까? 과연 승자들은 아무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기에 신이 그들의 손을 들어준 것일까? 아니, 나치의 범죄성을 부정하거나 음모론을 제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의 판단으로 증오하는 것과 학습된 증오는 분명 다르며, 후자는 결국 누군가의 마이크에 조종당한다는 점에서 1944년의 독일 국민과 얼만큼의 차이가 있는지 거리를 재 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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