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엄마가 오시는 날짜가 당겨졌고, 이삿짐 차 약속한 아저씨가 연락을 너무 늦게 주셔서 이사도 하루가 늦춰져버렸다. 집주인 아줌마에게도 갑자기 급한 일들이 쏟아져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의 여행 일정, 추가 매트리스 대여, 지금 아파트의 퇴거 등을 계속 확정짓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 도착은 4일 월요일.
또한 예정대로 4일에 입주가 불가능해짐에 따라, 이삿짐 차를 취소했고(일정 빨리 확정해 달라고 성화를 부려놓고 확정된 날 저녁에 취소했으니 얼마나 사람 우습게 보이겠어), 따라서 4일에는 기차로 파리에 가야 하며, 그러니 성수기임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려서 조정되는 스케줄에 따라 차표를 사야 하고, 이사도 내가 직접 차 몰고 가야 하며, 그에 따라 렌트도 빨리 예약해야 하고, 퇴거 날짜도 조정해야 했다. 그런데 집주인 아줌마가 11일도 도저히 안 된다고...
정식 계약서를 쓰거나 집 상태 확인 서류를 작성하는 관계는 아니다. 언제든 들어왔다가 언제든 나가도 좋다고 했고, 이번 주말에 이사하겠다고는 한 달 전부터 얘기했었다. 그러니 열쇠만 받을 수 있으면 아줌마 편하신 시간, 장소로 내가 가서 열쇠를 받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건 바보 같은 생각"이라며, 호텔을 잡으라고 하시는 거다. 그 이유라는 게, 집에 물건들이 있어서 (그 집 안에서) 정리를 해야 하고, 집안의 물건들을 사용하는 법을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치우실 물건도 아니고 집 안에서 정리할 것이라면, 엄마랑 당장 그 집에서 살 게 아니기 때문에 넓은 공간이 필요하지도 않고, 여름이라 난방도 필요없으니, 물 나오고 불만 켤 수 있으면 되는데 뭐가 문제냐고 했다. 맞다고 하시면서도 여전히 "그건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하신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든지, 입주 전에 합의를 봐야 할 일이 있다든지, 내가 건드려서는 안 될 물건이 있다든지 하다면 그렇게 얘기해주면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인데, 그런 말씀도 없이 무조건 "설명을 해줘야 살 수 있다"며, 정 이사를 하겠으면 짐만 갖다 놓고 호텔을 잡으라고 하신다. Z는 프랑스인의 마인드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했지만 나는 모르겠다. 지금까지 여러 사람을 겪어보진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이해가 안 되는 경우를 겪은 적은 없었으니까. 나를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왜 말이 안 된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고집을 부리시는 걸까. 엄마하고 모르는 사이도 아니시니까 이왕이면 좋게 대접하고 싶은 것이겠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답답하다.
결국 4일부터 1주일 동안은 단기임대 아파트에 들어가기로 했다. 350유로, 입주할 예정이던 곳의 한 달 방값이다. 그나마 호텔을 잡았을 경우의 1400유로와, 성수기라 방이 없을 가능성까지 고려한다면 많이 싼 편이다. 그리고 4일은 뚜르의 아파트 관리인을 최대한 빨리 만나서 매트리스를 빌리고, 퇴거 날짜를 취소하고, 렌터카를 예약한 뒤, 드골 공항으로 올라가야 한다. 단기임대 아파트 열쇠도 내가 받으러 갈 시간이 안 될 것 같아서 Z에게 부탁해뒀다. 1주일 뒤에는 엄마와 뚜르에 내려왔다가, 다시 파리로 올라갔다가, 엄마를 배웅한 뒤, 다시 뚜르로 내려왔다가, 다시 렌트를 해서, 운전을 해서 이사를 해야 한다. 파리-뚜르 왕복 기차값에 렌터카도 한 번 더 빌리려니 또 한 200유로가 더 깨진다. 결국 500유로 이상을 그냥 날리게 됐다. Rock en Seine 페스티벌에서 REM과 트리키가 함께 나오는 날의 티켓이 65유로라 부담스러운 나에게 500유로면, 라파예트 옴므의 마음에 드는 반팔 셔츠가 24유로인 것을 보고서 막판 세일인데 24유로라면 아깝다고 생각해서 그만둔 나에게 500유로면, 4인치 모니터스피커를 살 수 있고, 니스에 여행을 다녀올 수 있으며, 세일 기간에는 엄마에게 핸드백을 사드릴 수도 있고, Max/MSP/Jitter 5의 풀 패키지를 살 수도 있는 돈이다. 그리고 뚜르에서는 방값을 제외하고서 쓰는 두 달 생활비다.
게다가, 사람 일정 고려 안 해주는 다른 사람도 또 있고. 매달 한 번씩 찾아오던 대재앙이 어째 7월엔 없나 했더니 이런 식으로 오는 모양이다. 녹초다. 이사 가게 될 곳이 들라크루아의 고향이자 사드가 임종을 맞은 곳이고, 앙드레 메시앙 음악원이 있는 도시며 5분 거리의 뱅센느 숲에는 동물원도 있다면서 헤벌레하게 들떠 있었던 게 죄였나 보다. 죄 많은 인간 너구리가 주제 넘게 꿈에 부풀어서 벌 받나 보다. 일이고 짐정리고 공부고 청소고 다 싫다. 드라마 보고 잠이나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