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천수의 사회학이라고 제목을 삼기에는 뒤에 개론, 1을 덧붙여도 모자라, 그런 수업이 있다면 D-를 받은 리포트 수준의 한심한 깊이를 자랑하게 될 것 같지만.
나의
엄마는 유학 시절에 탄산수를 즐겨 드셨다. 덩달아 나도 즐겨 마셨다. 하지만 한국에 들어온 뒤로는 탄산수를 마실 기회가 무척이나 드물어지고 말았다. 엄마가 별로 내색을 하진 않으셨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릴 적 내가 콜라 같은 걸 마시고 싶을 때마다
"콜라는 나쁘니까, 사이다를 마셔"라고 하셨던 것도, 실은 초정리 광천수로 만들었다는 사이다가 인공 탄산을 집어넣은 콜라보다는 몸에 덜 나쁠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세월이 흘러서 시내의 까페나 레스토랑에 페리에를 갖다 놓는 가게들이 드문드문 생겨났을 때부터는, 아마도 나와 함께 가셨을 때만 그러셨을지 모르겠지만, 꼭 페리에 마실 거냐고 내게 물어보곤 하셨다.
탄산수는 사실 참 미묘한 물건이다. 다소 떨떠름하거나 시큼한 맛이 나는 경우도 있고, 쏘는 질감 때문에 아예 못 마시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일반 생수와 더 큰 차이가 있다면 바로
"가스가 들어있다"는 점일 것이다.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 하면, 따놓고 며칠 동안 마셔도 아무 이상이 없는 일반 생수와는 달리 탄산수는 병을 한번 따면 최단시간 내에 마셔야 가스가 아깝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돈 몇 푼을 아끼기 위해 1.5 리터로 산다든가 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엔 오히려 돈 낭비가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500ml 이상의 용량을 가진 탄산수를 산다는 것은 뭔가 이치에 닿지 않는다.
따라서 가스가 톡 쏘는 탄산수를 즐기기 위해서는 길어야 30분 정도 내에 한 병을 다 마시고 병을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전혀 경제적인 것이 못 된다. 프랑스에서야 다들 물을 사서 마시지만, 정수기도 없고 끓여서 마실 시간도 없을 경우에나 생수를 사서 마시는 게 보통인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는 경우도 드물지 않지 않은가. 게다가 생수를 사다 마신다고 해도 보통은 1.5 리터들이를, 가장 싼 물을 골라서, 그것도 6병씩 묶어서 조금 싸게 파는 것으로 사곤 하지 않나. 그런데 두어 모금으로 갈증이 해소되고 나서도 가스가 아까워 단시간 내에 다 마셔야 하는 탄산수를, 그것도 단가가 높은 500ml 크기로, 물을 하루에 세 번만 마신다 쳐도 벌써 세 병이지 않나. 탄산수는
고도 소비사회의 아이콘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그런 탄산수를 사서 마시기에는 한국인의 경제 관념이 그리 녹녹치 않다. 이건 콩나물 50원 깎는 생활감각 때문만이 아니라, 술값 10만원은 아깝지 않아도 씨디 한 장 1만 5천원은 아깝다는 가치기준과도 관계된다. 술이랑 씨디로 비유를 하니까 굉장히 부정적인 것 같은데, 뭐 꼭 그렇게 생각할 일만은 아닐 수도 있다. 생필품과 기호성 생필품, 기호품, 여가생활, 과시형 소비 등의 기회비용 중에 어느 것에 비중을 두느냐의 단순한 '차이'일 뿐이다.
따지고 보면 술값은 아무리 낮게 봐도 기호성 생필품 비용이고, 술값이 비싸지는 이유를 생각하면 점점 뒤쪽으로 밀려나니까, 뭐. 음음. 어쨌든 탄산수는 비경제성이 아무래도 강조될 수밖에 없다. 물부족 국가임에도
물은 공짜라고 생각하니 더욱.
그러니까 청계천에도 수돗물 갖다 붓지. 운하에도 수돗물 부어라, 응? 한국에 세계 3대 광천 중 하나인 초정광천이 있음에도 한국인이 탄산수를 즐기지 않는 것은 그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된장녀 신드롬이 유행할 때도 페리에를 거론하는 경우가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사실 페리에는 스타벅스에서 가장 싼 메뉴 중 하나에 해당하지만, "물 한 병에 3천원!"이라고 하니까 뭔가 어마어마해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나 같은 된장 좌파는 페리에를 종종 사 마시면서도 탄산수를 마실 때마다 한 병씩 통, 통, 통 생겨나는 일회용 쓰레기에 대해서도 심한 죄책감을 느낀다.
그래도 초정 탄산수를 파는 곳이 있긴 하더라. 인터넷으로 주문할 수도 있다. http://carbonwater.co.kr 이라는 도메인이 무척 인상깊지만...; 출국하기 몇 달 전에 이곳을 알게 돼서 500ml 용량으로 두 박스를 주문한 적이 있었다. 500ml 20병에 1만 8천원, 한 병에 900원이니 우송료가 없다는 걸 생각하면 비싸지만은 않다. 엄마가 무척 즐겁게 드셨다. 오늘은 동네 슈퍼마켓에서 물을 사다가 탄산수를 샀다. 평소에 생수는 근방에서 가장 싸게 파는 0.19 유로의 크리스탈린 1.5 리터를 사고 있지만, 역시 탄산수도 가끔은 마시고 싶다. 오늘 산 것은 500ml 6 병에 3.09 유로인 바두아다. 페리에는 4 병에 2.8 유론가 그러니까, 이 쪽이 한참 싼 편이다. 맛은 좀 싱거운 것 같지만.. 엄마가 유학에 다녀오셔서 수십 년 동안 탄산수가 얼마나 그리우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왠지 마음이 좀 그랬다. 이달 말쯤에 내 카드로 또 한 박스 정도 주문해서 보내드릴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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