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방 TV가
깜짝 이벤트를 열어주었다. 거실에 큰 TV가 들어온 이후로 중간방으로 밀려난 신세긴 하지만, 여전히 사랑받는 녀석이었다. 나야 밥 먹는 동안에나 잠깐 볼까 말까 한 정도로 TV 이용이 적고, 엄마가 퇴근하신 뒤에 드라마를 보신다든지 하는 용도는 왜인지 중간방 TV였다. 큰 TV가 아깝지 않느냐고 해봐도, 전기세가 많이 나온다든지, 거실의 가죽소파가 차가워서 중간방이 좋다든지 하는 이유들이었다. 이건 말하자면 동생이 태어났는데도 맏이가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상황이랄까. 그 기쁨에 보답하고자 한 것이 그저께의 이벤트였던 것 같다.
이벤트는 다름아닌
불꽃놀이. 펑! 펑! 하는 몇번의 폭음과 함께 화면 속에서 오묘한 불꽃들이 이어졌다. 뭔가 타는 냄새가 좀 나긴 했지만, 그 정도는 불꽃놀이에 있어서 오히려 낭만이랄까. 멋진 이벤트였다. 엄마와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가끔 그런 도시전설 같은 게 있지 않나. 집안에서 오래 키운 고양이가 늙어 집을 나가면서 현관에 쥐 세 마리를 곱게 물어다놓고 사라진다든지 하는. 그것이 그동안 괴롭힌 주인에 대한 저주인지, 그동안 사랑해준 주인에 대한 작은 정성인지는 사람으로선 알 수 없다만. 중간방 TV의 행동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처리업체에 전화를 해서 약속을 해두고, 관리실에서 카트를 빌려왔다. 카트가 현관 문턱을 넘어서기 힘들 것 같아서 TV를 현관까지만 들고 나르려고 했다. 들어올릴 때까진 멀쩡했다. TV도 내 품에 안겨 현관으로 향하면서 슬슬 생각한 모양이다. '감사의 이벤트까지 열어줬더니 이게 날 내다버려?' 나는 옆구리를 삐끗했다. 우리집 TV는 츤데레였던 모양이다.
그렇게 심한 부상은 아니다.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있을 만큼 삐끗해본 적도 있어서 아는데; 이 정도면 생활에 불편함은 없다. 계속 쿡쿡 쑤시기는 하지만서도. 그래도 이글루스
막장 블로거는 길에서 자동차가 폭주해 자신에게 달려오면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라고 포스팅을 한다고, 나도 약한 척 좀 해보고 싶어졌다.
(뭔 소리야) 당당한 이글루스 막장의 길.
병문안들 와주세요. 찾아오실 주소는
http://cdrack.egloos.com.
저 마지막 한 줄로 인해 막장 확정인 것 같은 이 기분은 왜인지, 쥐 물어놓고 집 나간 늙은 고양이도 알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