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했던 생각이지만요, 나는요, 리메이크는
재창조거나 애정표현이거나 둘 중 하나여야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해석을 해보고 싶다든지 혹은 그 노래가 너무나 좋아서, 혹은 원작자나 원래 가수에게 오마쥬를 하고 싶다든지 말이에요. 그렇지 않고 그냥 곡이 없어서 리메이크를 한다면 그것은, 원작자-원래 가수와 원곡을 사랑한 사람들,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 한꺼번에 모욕하는 행위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한국 가요사에 등장한 모든 노래를 다 한번씩 새로 내려고 달려드는 듯한 요즘의 리메이크 붐 속에서, 그
(나만의) 기준에 해당한다고 생각되는 곡은 솔직히 단 한 곡도 못 찾겠네요.
재창조라고 해서 대단한 걸 바라는 거 아니거든요. 하지만 적어도, 현업 메인스트림 작곡가들이 다 기본 프리셋으로 저장해놓고 매번 불러오는 비트만 깔았다고 해서 그게 재해석이나 리폼이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잖아요. 뭐, 자기 곡에도 일말의 참신함을 허용하지 않는 완벽주의자들이니 남의 곡에 손을 대겠습니까만은. 그 뻔하디 뻔한 곡 대충 미디 찍고 콩나물 그리는 것도 하기가 싫어서 리메이크를 선택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데. 너희들 생전 공짜 밥만 먹고 살아봤냐. 대단한 명곡을 써내라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성의는 보이고 살아야지요, 이것들아.
그리고 정작 본인은 그 곡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는데 리메이크라. 아니, 좋긴 좋겠죠? 무대 서려면 연습하느라 죽어라 들었을 테니까. 계속 듣는다고 안 좋은 곡이 좋아지냐고요? 당신들이 그 곡이 팔리리라 기대하는 것도, 오로지 귀에 익숙하기 때문 아니겠어요? 아니 뭐, 시시콜콜 얘기하기도 구차하네요. 그런 건 리메이크가 아니라,
그냥 곡을 사온 것이겠죠.
진짜 징그러울 정도의 리메이크 붐이에요. 리메이크를 안 하는 가수가 없고, 리메이크되지 않는 곡이 없네요. 이러다 리메이크 한번 안 된 과거의 곡은 정말 시시한 곡이었다는 식의 지표도 생겨날 것 같네요. 역사를 포함한 가요계 전체에게 있어서는 매혈행위에 가깝고, 당사자들에게 있어서는 살인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음반을 안 사서 그런다는 소리 하면 맴매 합니다. 불법 다운로드가 정당화될 수야 없겠지만, 남들에겐 음악이 여가라서 돈 쓰기 아깝다고 하더라도, 당신들에겐 직업 아닙니까, 최소한의 직업윤리는 있어야죠. 손끝 하나 안 움직이고서도
-그나마도 방송국 라이브러리나 자기 씨디 랙을 뒤진 게 아니라 옛날 노래책이나 자기 하드 뒤졌겠죠- 돈은 벌고 싶다는 건가요. 그럴라면 때려치든가.
여전히 관심이나 기대를 가진 내가 죄인입니다. 올 하반기에 여태 나온 곡들 중에 그나마 좀 머리 굴린 게 배슬기의 <말괄량이> 밖에 없는 이런 씬인데 말이죠. 몇년 전까지만 해도 그래도 가끔씩은 다소나마 참신하거나 공 들인 곡들이 나왔던 것 같은데. 그래, 나도 이젠 진짜 관심 끊을랍니다. 다 죽어버리든지 말든지. 한국 메인스트림 음악 아예 안 들어도 괴로울 것 하나 없거든요.